휄로쉽칼럼

2020년 9월 13일 | 목회칼럼 | 공동체성을 이렇게 회복하고 유지하자

공동체성을 이렇게 회복하고 유지하자 지난 3월 11일에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한 지 벌써 반년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재앙이 시작되기 전부터 교회에 영적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계속 있었는데, ‘교회의 공동체성 상실’이라는 경종(警鐘)이었습니다. 서구 교회사를 보면,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급속하게 개인주의화 되면서, 교회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공동체성 상실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2020년 9월 6일 | 목회칼럼 |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때문에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때문에 요사이 교회 어르신들 가운데 노인성 치매로 인하여 고생하시는 권사님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그런데 기록에 보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미적분법을 발명한 아이작 뉴턴도 그의 노년에 치매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뉴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데, 그는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광학자였을 뿐 아니라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2020년 8월 30일 | 목회칼럼 | 세 가지 질문

세 가지 질문 자신이 운명하는 순간에 “드디어 하나님께 당첨되었다”고 고백했던 톨스토이가 쓴 책 중에 ‘세가지 질문 (The Three Questions)’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이 단편소설에는 한 왕이 등장하는데, 그에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곧 “무슨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왕이  경청해야할 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2020년 8월 23일 | 목회칼럼 | 보다 크신 하나님

보다 크신 하나님 새벽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60번 프리웨이를 올라섰을 때입니다. 승용차 한대가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데 뒷창에 무언가 주저리주저리 글을 붙여놓았습니다. 개인 사업하는 사람이 저렇게 광고 글을 차에 붙여놓았나 보다 하면서 뒤를 따라가는데 프리웨이에 정체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서행하면서 그 차 뒤편 가까이에 서게 되었는데, 제 눈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왔습니다. “God Is Bigger…

2020년 8월 16일 | 목회칼럼 | 광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광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의 삶과 가장 유사한 길을 걸었던 한 사람을 찾으라 한다면 저는 단연 야곱을 꼽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이 그의 생애 처음으로 영적 눈이 열리고 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내용이 창세기 28장에 나옵니다. 형 에서의 앙갚음을 피하기 위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던 도중에…

2020년 8월 8일 | 목회칼럼 | 그리스도인이란 이름값

그리스도인이란 이름값 옛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는 이름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름 없는 들꽃”이란 표현을 쓰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 꽃의 이름을 모를 뿐이지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름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면 원자기호 이름을 짓고, 새롭게…

2020년 8월 2일 | 목회칼럼 | 코로나로 인한 변질인가 아니면 변화인가?

코로나로 인한 변질인가 아니면 변화인가? 여러 사회학자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코로나 장기화’가 현실화 되면서 이젠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이야기하기 전에 위드 코로나 (With Corona)를 이야기할 때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WHO에서 팬데믹을 발표했을 때만해도 몇 개월이 지나면 끝나겠지 생각했지만, 이젠 정말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2020년 7월 25일 | 목회칼럼 |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며칠 전 복음방송에서 나오는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을 듣다가 “아 ~ 지금 우리가 광야에 서 있구나”는 깨달음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찬양곡 중에 특별히 제 마음에 깊은 공감을 일으키는 내용이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2020년 7월 19일 | 목회칼럼 | 친교의 뉴 노멀 (New Normal)

친교의 뉴 노멀 (New Normal)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표준 (뉴 노멀) 가운데 교회를 세우는 두 기둥으로 예배와 전도에 관하여 지난 두 주동안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친교에 대하여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이 휄로쉽 교회입니다. 휄로쉽 (fellowship)이란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라는 헬라어의 영어식 표현이며 한국말로는 ‘친교’, ‘교제’, 또는 ‘사귐’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친교라고 할 때에는 그 의미가…

2020년 7월 12일 | 목회칼럼 | 전도의 뉴 노멀 (New Normal)

전도의 뉴 노멀 (New Normal)   지난 주에는 예배의 ‘뉴 노멀 (New normal)’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다섯가지 기둥을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전도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 두가지를 꼽으라 하면 단연 예배와 전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주요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구원의 복된 소식을 열방에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