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8일 목회단상: 칼레의 시민들

칼레의 시민들

영국과 프랑스 두나라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아오던 프랑스의 북부 도시 칼레는 지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백기를 들게 됩니다. 항복 사절단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시민들 모두가 학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영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이 요청을 받았던 에드워드 3세는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지난 1년동안 치러진 전쟁에서 희생당한 우리 영국군의 죽음과 손실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칼레의 시민을 대표하는 6명은 교수형에 사용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걸어 내 앞에 나오라. 그러면 대신 칼레 시민들의 생명을 살려주겠다.” 이 이야기를 들은 켈레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 중에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6명의 시민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들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희생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를 시작으로 장 데르, 자크 드 위상, 장 드 피에네, 피에르 드 위상, 앙드레 당드리에 다섯명이 영국 왕에게 바치는 칼레시의 열쇠를 들고 밧줄을 목에 건 채 에드워드 3세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그러나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왕비가 그들을 죽이면 자신의 뱃속에 있는 왕자에게 어려움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조각가 로댕에게 그 용감한 6명의 칼레 시민들을 기념하는 동상을 제작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바로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The Burghers of Calais)’입니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프랑스어로 부와 명성과 권력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는 뜻)의 교훈을 남겨주는 동시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뜻을 일깨워 줍니다.

사랑하는 휄로쉽 가족 여러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6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도 우리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많은 열매가 맺어지길 축복해 봅니다. 할렐루야!

2014년 6월 8일 박혜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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