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8일 | 목회 단상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82년에 청나라에 유학간 학생을 통해 우리나라에 신기한 물건이 전해졌습니다. ‘덕률풍(德律風)’이라는 것인데, 멀리서 사람끼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덕률풍은 전화기의 영어인 ‘텔레폰(telephone)’과 비슷한 한자음을 가져다 붙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화기는 88서울 올림픽 때는 1가구 1전화 시대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덕률풍은 무선 전화라는 강적을 만나 소멸되기 시작했고, 무선 전화기도 얼마가지 않아 스마트폰에 밀려 단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하여,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예측대로 지식이나 기술이 조금씩 진보하던 연속의 시대는 저물고, 단절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침과 분침이 돌아가는 동그란 시계에 익숙한 아날로그 세대와 숫자만 바뀌는 네모형 시계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는 사고방식이나 삶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릅니다. 특히 두 세대의 차이 중 하나로 ‘사고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데, 문제는 아날로그 세대는 수직적 사고방식으로 ‘옳고 그름 따지기’에 익숙해서 ‘나만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고, 내 생각으로 남을 가르치고 설득하거나 아니면 정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갈 때에도 아날로그 세대의 사고방식에 익숙하기에 그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실에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할 때 그것이 독선이나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고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주위 형제 자매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게 되며, 내가 틀린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즉각 고치고 잘못을 시인하는 겸손과 온유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틀림없이 항상 옳은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틀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틀린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는 고쳐 쓰는 시대가 아니라 바꿔 쓰는 시대라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을 바꾸게 됩니다. 주님 앞에 더욱 겸손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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