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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3일 | 목회칼럼 | 말 한마디가 사람의 길을 바꾸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국어책에 나오던 시 중에서 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시 한편이 있습니다. 피천득씨가 번역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입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 마무리되는 시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이 시의 시상(詩想)처럼 먼 훗날이 된 지금 이전에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로 아쉬워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다혈질이던 저는 청소년기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워낙 하고 싶은 것이 많다보니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 저것 조금씩 하다가 끝내버린 것이 많습니다. 색소폰도 불어보고, 클래식 기타도 배워보고, 운동도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도 많이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시절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다가, 중학교에 진학해서 미술반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방과 후에 미술실에 가서 특별지도를 받으며 처음 경시대회 준비를 할 때입니다. 새로 부임한 미술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고 “혜성이 네 그림은 왜 이발소 그림이냐?”고 평을 하셨습니다. 옆에서 쳐다보는 친구들의 시선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슬그머니 미술실을 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미술반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미술 전시회나 좋은 그림 작품들을 대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곤 합니다. 특히 요사이 말씀그림으로 사역하시는 권사님 작품을 아침마다 열어보면서, 그 때 미술 선생님이 다른 이야기를 해 주셨다면 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생각이 되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금은 후회함이 없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만은….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낙담시킬 수도 있고, 소망으로 세울 수도 있으며,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벌써 2019년 두번 째 달이 시작되었네요. 올해는 우리 교우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복돋우는 말들만 하여 사랑으로 멋지게 세워지는 휄로쉽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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